목회자 칼럼  성종근 목사
                       “삶과 죽음 사이”
먼 것 같은 동과 서가 바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인생의 삶과 죽음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출발합니다. 미얀마 7.7 지진으로 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종말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종말은 두려움보다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사모하고 기대하도록 성경은 처음부터 종말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0-11). 
성도는 주님을 따를 때부터 자기를 부인하는 순교 훈련입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는 믿음의 원리를 가지고 삽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 자체가 나는 십자가에 죽었고,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인데 우리는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다 누려 보려고 믿음을 이용합니다. 그러다 고난이 오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 정신을 차립니다. 지금 어떤 생명으로 살고 있는지? 말에나 일에나 누구의 이름으로 하고 사는지? 성도는 주님 안에서 살줄도 알고 죽을줄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 안에서 죄 때문에 매일 죽는다고 고백합니다 (고전 14:31). 교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는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조용합니다. 아무리 시끄럽게 욕하고 칭찬하고 노래 불러도 조용합니다. 모두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사는 것은 산제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제물은 이미 죽은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 몸을 제물로 받고 단지 살아 있도록 허락함으로 우리 몸의 거룩한 행실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은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제물로 하나님을 위한 몸의 예배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절기 어떻게 동참하고 있습니까? 때가 악하니 세월 아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이 없으면 헛된 그림자 인생입니다.